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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서울시장의 구조와 특질 (이영훈 2007-06)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시 : 2008-09-08
첨부파일 : 파일 다운로드 2007_6월 제도경제(이영훈).pdf
1. 문제제기 17-19세기 서울은 인구 20만의 대도시였다. 그 다음으로 큰 도시가 인구 1-2만으로서 전국에 7개 정도였다. 서울은 발군의 대도시였다. 20만 도시인의 생활 자료는 상당 부분 시장경로를 통해 공급되었다. 쌀과 면포의 일부분은 중앙정부의 재정지출의 경로를 통해 서울에 공급되었다. 면포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재정경로로 공급되었다고 보인다. 쌀의 경우는 재정경로의 비중이 대략 1/3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외에 자급부문도 있었다. 서울 인구의 1/6-1/7 정도는 직업이 농민이었다. 이렇게 비시장 부문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서울 20만 인구의 생활자료는 거의 대부분 시장을 통해 확보되었다고 보인다. 본 연구는 그렇게 서울에서 성립한 전국 제1의 시장이 어떠한 성질의 시장인지를 주요 재화의 가격변동을 통해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가격의 변동이 생산, 소득, 화폐 등 여러 요인의 변동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인다면 競爭市場이라고 할 수 있다. 물가에 충격을 주는 요인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잘 움직이지 않는 경우는 非競爭市場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시장에서는 시장을 지배하는 수요자나 공급자가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수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비인격적 관계로 경쟁적으로 거래한다. 반면에서 비경쟁시장에서는 시장을 지배하는 수요자나 공급자가 있다. 오늘날의 독과점 시장에서는 공급자인 소수의 大企業이 시장의 지배자이지만, 전근대의 신분사회에서는 수요자인 소수의 貴族層이 시장의 지배자였을 것이다. 본 연구는 그러한 시각에서 19세기 서울시장의 구조적 특질을 밝히고자 한다. 서울시장과 농촌시장과의 연관성은 어떠하였을까. 서울시장은 농촌시장을 통합하는 高次市場이었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그 통합의 범위는 어느 정도였을까. 이 점도 본 연구의 한 가지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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